어떤 데쟈뷰
거룩함과 절대적인 윤리에 대한 갈급함으로 성경을 읽었었다.
그러나 어느 날 문득, 내가 깨달은 것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의, 바로 나의 죄악과 나약함과 정처없는 모습이었다.
사회복지를 배워서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어야지 하고 사회복지대학을 갔었다.
그러나 어느 날 문득, 강의를 듣다가 나 역시 문제를 가진 사람이었고, 역갈등의 가족 관계에서 서로 힘겨워하고... 그것이 사회의 한 단편임을 보게 되었다.
뷰티풀 마인드 영화에서, 스스로 사고하는 힘으로 정신분열증을 이겨낸 존 내쉬 박사의 성공과 그를 내조한 아내의 아름다운 사랑이 너무 좋아 책을 사보았었다.
그러나 그 두꺼운 책을 쓴 저자는 영화에서와는 또 다른 그들의 모습, 더 복잡하고 실망스러운 인간관계마저 들려주었고, 그 투병과 사랑의 회복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사회복지에 대한 신념, 여기저기서 받아 모은 자격증으로 나는 사회복지서비스를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러해야 했다.
그러나 내가 만났던 아이들은, 장애인들은 나의 머리나 자격증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들이 원했던 것은 차라리 나의 손과 발이었고, 함께 있어 주는 것이었다.
정치는 정의로와야 돼, 정치를 똑바로 해야지 뭣 하는 거야, 어떻게 저렇게 밖에 정치를 못하는 거야.... 안타깝고 부글부글 끓는 마음으로 정치적~ 강좌를 듣게 되었다.
그런데 정치는 선한 목적을 위해서 부득이 악한 수단마저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단다. 한 치의 윤리적 빈틈이 없어야할 것 같은 정치도, 평균적 인간이 가진 한계 위에서 하는 것이란다.
그래 그렇다면, 평균적 인간의 한계를 다시 발견하는 시간인 셈이다.
그리고 이런 도덕적 비애감을 이겨낼 만한 내적 단단함과 실력을 갖추어야 한다는데...
아뿔싸, 그러고 보니 나의 내적 단단함을 확인하는 경험도 했다.
카페 후의 화장실에서 바지단을 편다고 엎드리다가 퍽~!! 손 닦는 티슈함(사각 스텐함)의 어딘가에 내 머리통이 부딪쳤다. 아픈 건지 진짜 소리가 난 건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아직 머리통도 나도 멀쩡한 것 보니, 나의 내적 단단함도 이만하면 쓸만하다능....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