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받은 곳에서 시작하라 - 휠체어 탄 의사의 병원 분투기
두 개의 줄기가 서로 감으면서 타고 올라가는 등나무 줄기가 연상된다.
양쪽 발목이 아파 10분 서있기와 30분 걷기 이상의 활동이 힘든 사람, 그러나 의사가 되고 싶어하는 류미.
급기야 휠체어를 타기까지 병원실습과 인턴 수료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 하나.
병원실습과 인턴 과정을 통해 주인공과 함께 경험하게 되는 병원 조직 엿보기 둘.
책을 읽던 초반에는 겨우 양쪽 발목 아픈 것 때문에 이것도 저것도 못하겠다는 투의 이야기 전개가 지루했다.
그런데 차근차근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니, 발목 통증에 대한 느낌이 전해졌고, 휠체어를 사용하기로 결정하고 적응하는 어려움들이 생생하게 와닿았다.
인턴 과정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자기 역할을 찾아가고, 도움을 요청하고 지원 받는 관계 형성을 하고, 우여곡절 끝에 꼴찌라는 성적을 받지만 끝까지 해낸다.
이 책의 마지막엔 밀양 부곡마을의 정신병원에서 레지던트 2년차를 하며 환자들과 지내는 류미의 모습을 보여준다.
간간이 류미의 주변에 나타났다 사라지기도 하는 사람들, 가까이 머무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흥미있다.
의대 학창시절 함께 스터디모임을 했던 친구들은 졸업 후 각자 다른 진로로 인해 잠시 헤어지기도 하지만, 다시 해후한다.
병원실습 마지막 외과 수술방에서 '너보다는 외팔이가 낫다. 나가라' 는 교수의 비수,
한 때 연인이었다 다른 길을 가고 있던 남자가 결혼했다며 혼절시키는 통보,
자기 일보다 더 관심을 가지고, 냉철한 현실 검증과 중요한 결정을 조언하며 두뇌 역할을 해주던 친구 한솔(나중엔 헤어지지만)과
언제나 달려와 이야기를 들어주고 같이 있어주는 태율...
실습이나 인턴 동기들의 씁쓸한 경쟁 관계도 있고, 몇 차례 낙방의 고배도 마시지만,
또 다른 역할을 찾도록 돕는 동료, 선배, 병원 사람들이 넉넉한 품이 되어 준다.
나에게도 몇몇 실패와 좌절의 경험이 있다. 마치 류미의 발목 통증처럼.
나를 신뢰할 수 없었던 시간들, 앞날이 보이지 않던 막막함들...
그러나 좋은 만남들이 있었고, 하나 둘, 작든 크든 나름 성취의 경험들을 하기 시작했다.
나를 신뢰하게 되었고, 지금도 앞날이 분명하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지만, 이제는 두렵지 않다.
류미의 발목 통증이 지금도 있겠지만, 그것이 더 이상 그녀 인생의 발목을 잡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함께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