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주의 자료집

만들어진 현실 - '한국의 지역주의'에 관하여 (1부, 4부)

지구별 여행 2016. 2. 7. 07:02

올해 첫 강좌로 정치발전소의 정치적 글쓰기/말하기에 참가하기로 하였다.

월요일 저녁마다 미디어카페 후에서.

 

첫날 주제는 박상훈 교수님이 직접 쓰신 '만들어진 현실'의 한국 지역주의에 대한 것이다.

이번 주말, 그동안 읽은 부분까지 요약하며 내 생각도 다듬어 보려고 한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의 나로서는 영호남 지역갈등을 통설처럼 알고 있었고, 그것에 대한 확신도 없었지만 또한 의문도 없었다.

그럴 수 있겠지, 그런가보다 하는 정도로 알고 있었다.  

내 일상생활에서 피부에 와닿는 현실적인 문제는 아니었지만, 여러 언론에서 익히 들어왔던 소재임에는 틀림 없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한국의 지역주의가 실제 지역주민들 간에 발생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층 또는 권력의 수혜자들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에 놀랐다.

이데올로기 또는 요즘 흔히 쓰이는 표현으로 프레임이라는 것. 정치권에서 어느 한 편(권력층)이 먼저 프레임을 짜면 다른 한 편이 그것에 대응할 수록 그 프레임에 갇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한국의 지역주의도 그런 이데올로기, 프레임 중의 하나로 그동안 이용되어 왔다는 것이다.

 

우선 내용을 요약해보자.

이 책은 한국의 지역주의 문제가 실제 현실 내지 사실성에 근거한 측면보다, 거꾸로 이데올로기화된 인식을 통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측면이 크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조사와 연구의 초점은 지역주의 그 자체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지역주의를 둘러싼 이데올로기적 해석의 문제로 확대된다.

그러면서 호남에 대한 우리 사회 일반의 잘못된 편견과 싸우는 방법을 달리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지역과 관련된 편견이나 고정관념은, 지역적 차이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지역적 차이에 동반된 '권력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실제의 역사보다 역사 해석을 둘러싼 투쟁이 더 중요할 때가 많다는 것, 따라서 역사는 과거의 문제로서가 아니라 특정의 해석을 필요로 하는 현재의 권력관계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 그럴 때 특정 방향의 의미 구조를 담고 있는 편향성 내지 편견은 역사 해석을 둘러싼 투쟁에서 매우 중요한 수단이 된다는 것, 그러므로 옛날부터 그랬다는 생각이나 전통이라는 것도 잘 따져 보면 누군가의 필요에 의해 작위적으로 창조되는 일이 허다하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흥미로운 이론들이지만, 한국 지역주의의 사례도 그렇게 이해될 수 있다.

 

그러면 우리 정치사에 지역주의 망국론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이용되어 왔는가.

 

1971년 박정희 vs 김대중 선거

영호남을 빼고 계산하면 김대중 후보 지지표가 박정희보다 많았을 정도로 사실상 이 선거에서 승자는 김대중.

그럼에도 지역감정 때문에 나라가 분열되어서 큰 문제라는 해석이 선거가 끝나고 나타났는데, 무엇보다도 그것은 선거에서 나타난 시민의 의사를 민주화에 대한 요구로 해석되지 않게 하려는 집권 세력의 전략적 의도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요컨대 선거가 지역주의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선겨 결과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이데올로기화된 지역주의론이 의도적으로 동원되었다.

 

1980년 민주화의 봄

신군부 세력과 관제 언론들은 민주화에 대한 기대가 컸던 당시의 정치 상황을 3김으로 대표되는 정치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야욕을 실현하기 위해 지역감정을 불러일으켜 사회를 분열시키고 정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는 형국이라고 왜곡 해석했다. 그러면서 지역감정으로 나라가 망하게 되지 않으려면 새로운 정치 세력이 등장할 수 있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바로 전두환.

 

1987년 대선, 민주화 이후

민주화를 했더니 지역감정이 폭발해 사회불안만 심화되었다는 것이다. 3김이 전국을 지역감정으로 봉건화화면서 나라를 분열시키고 있다는 담론이 다시 등장, 그 생산자는 노태우를 비롯해 재집권을 목표로 하는 권위주의 집권당의 지지세력들. 야당 후보들이 분열하고 선거에서 패배하자 지역주의 망국론의 설득력은 대중 여론 일반으로 확대되었다.

 

1990년 3당 합당

김영삼과 김종필 세력이 집권당에 합류하면서 내건 정치적 알리바이 역시 '망국적 지역감정 때문'이었다. 지역감정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3당 합당이라는 것.

주목할 것은 이때 이후 호남 출신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영남 지역 패권'에 대항하는 '저항적 지역주의론'이 집중적으로 제기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모든 지역감정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지역주의 망국론'에 맞서는 '패권적 지역주의 망국론'으로 불릴 만한 일종의 비판 담론이 본격적으로 조직되기 시작했다.

 

1995년 지방선거~1996년 15대 총선~1997년 대선, 김대중의 복귀와 정치적 재편

그의 복귀는 야당 진영뿐만 아니라 정치 세력화에 나선 사회운동 진영 전체를 호남과 비호남으로 분열시켰다.

이재오, 이우재, 김문수 민중 정당 세력 -> 민자당과 신한국당 -> 한나라당

이회창, 이수성, 조순 민주대연합 -> 한나라당

이들이 한나라당에 들어가면서 내건 담론 역시 지역주의 망국론이었다. 이때의 경험은 결정적이엇다.

이제 지역주의 망국론의 담론 생산자는 더 이상 보수적 정치 세력과 주류 언론에 한정되지 않게 되었고 진보 세력과 시민운동, 지식인의 상당 부분으로까지 확대되었다.

지역주의 망국론이 명실상부한 지배 담론이 된 것은 바로 이 과정에서였다.

 

2005년 노무현 정부

노무현 대통령과 집권당에 대한 지지도가 급격히 떨어지고 잇단 재보궐 선거에서 여당이 연패하는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이 모두가 지역주의 때문이라며 정권을 내놓을 각오로 지역주의 극복에만 찬성한다면 한나라당에 권력을 넘기겠다며 '대연정'을 내세웠다. 이것은 에피소드로 끝났지만, 누구든 국면 전환 내지 인위적 정계 개편의 욕구를 강하게 가질수록 지역주의 망국론을 동원하고자 하는 정치적 유혹은 늘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2009년 이명박

국정 기조를 전환하고 내각과 청와대를 대대적으로 개편해 달라는 당 안팎의 요구에 대해 입장을 밝히면서 이명박 대통령은, '지역주의와 같은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힘을 쏟아야지 여론에 밀려 왔다 갔다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는.

 

인간은 이데올로기 안에서 사실을 인식한다 - 안토니오 그람시

사실이란 인간의 인식 세계와 분리되어 객관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사실 이전에 사실을 이해하는 방법을 둘러싼 투쟁이 중요하다는 의미.

 

우리 사회에서도 민주화가 되고 직접적인 강제나 물리적 억압의 사용이 크게 제한되면서 이데올로기의 기능과 역할은 아주 커졌다. 언론의 정치 교육 기능이 사태를 이끄는 중심적인 힘이 되었고, '사실'만큼이나 '사실을 이해하는 방법'도 중요해졌다.

 

지역주의적 사실을 해석하는 '안경의 문제'를 그대로 둔 채, 지역주의의 문제를 객관화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저자는 지역주의 문제에 대한 기존의 지배적인 해석 틀이 달라져야 하고 이를 개선하는 방법  역시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정 지역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문제가 정치적으로 악용되고 사태를 개선하기보다는 심화시키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된 데에는, 지역주의에 대한 잘못된 해석이 기여한 바 크고, 그렇게 잘못 보도록 만드는 작위적인 힘의 작용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영향력을 조직하려는 진짜 지역주의자가 누구인지를 밝힌다. 앞서 우리 정치사에서 살펴본 지역주의 망국론의 내용이 핵심이다. 책의 본론 2부와 3부에서 지역주의의 형성, 지배 담론화, 변화의 문제를 살펴보고 한국의 민주화가 왜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지역을 중심으로 한 정치적 갈등 구조로 이어졌는가 하는 문제를 자세히 다루고 있다.

 

지금 박근혜 정권에서도 20대 총선을 앞두고 여야간 정치구도를 설명하는 각종 언론매체들이 여전히 호남 지역을 중심으로 한 지역주의 갈등을 언급하고 있다.

여당과 야당의 대립뿐만 아니라 야당 내 균열들이 혼란스러울  정도이다. 특히 박근혜 정권 내에서 연이은 야당의  선거 참패로부터 야당의 균열, 즉 안철수 신당에 이르기까지 주요 갈등과 문제들을 살펴보면서  박근혜 정권에서는 지역주의가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찾아보고 싶다. 

2012년 19대 총선과 18대 대선으로부터 2016년 20대 총선(4월 13일)에 이르기까지 최근의 정치 상황에서 주요 언론들에서 다루고 있는 '지역주의'를 정리해보면 될까?

이번 정치적 글쓰기/말하기를 공부하며 도전해볼만한 주제가 될 것 같다.

아직 정치적 안목이 미성숙하기에 강좌와 토론에 힘입고, 고찰을 통해 우리나라 정치현실을 바로 볼 수 있기를, 그렇게 훈련되기를 기대한다.

가까이는 20대 대선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또한 향후 우리나라의 정치가 성숙하고 진보해가기를 바라는 시민으로서 그 변화는 무엇이고, 어떻게 참여할 수 있을지 가늠해보고 싶다.